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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때론 차갑게, 때론 뜨겁게… 나와 他人에 말걸기
2014/03/1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5,283




때론 차갑게, 때론 뜨겁게… 나와 他人에 말걸기

3인3색. 노·소장 문인 3명의 산문집이 최근 잇달아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박범신(68) 작가의 ‘힐링’(열림원), 문학평론가 도정일(73) 교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이상 문학동네), 김사과(30) 작가의 ‘설탕의 맛’(쌤앤파커스)이다.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세 사람의 산문집답게 각각의 책은 독특한 구성과 문체를 보여준다. 산문집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세 문인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우선, 박범신 작가의 산문집 ‘힐링’은 제목 그대로 아포리즘적 문구들로 가득하다. 지난 2011년 말 충남 논산으로 내려간 작가는 그곳에서 머물며 때로는 벽에 낙서를 그리듯, 또 때로는 홀로 독백하듯, 어떤 땐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서로 대화하듯 짧은 글들을 써내려 갔다. 마치 무심코 읊은 시 한 수 같은 글들엔 작가가 홀로 보낸 2년여 동안의 소소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쓸쓸하고 적막한가 하면 어느 순간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대목.

“내가 서툰 건 나 자신에 대한 ‘힐링’이다. 자기 연민, 아니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낀 나를 보는 건 괴롭다. 젊을 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뒤끝이 긴 게 내 장점인 줄 알았다.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진실로 너그러워지려면 자신에게 먼저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짧지만 강렬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꿈과 희망을 건네기도 하고, 작가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다른 대목에서 작가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오래 함께 산 아내는 내게, 그 관계가 초월에 걸쳐져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그런데도 왜, 때때로 어떤 여자를 보면 맘속에서 먹물이 소리 없이 확 번지는지 모르겠어.” 이어지는 문장에서 작가는 “나이 육십을 넘기고 늙은 아내가 어둠 속에서 코를 고는 소리보다 더 슬픈 노래는 없다는 걸 겨우 알았다. 생의 이해란 이런 것이다”라고 토로한다.

박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말조차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조언을 던질 뿐이다. 예를 들어 작가는 “나날이 빛나는 일상인 삶이 있을까”라고 운을 떼면서 “내가 넘어져 있을 때 누가 진실로 나보다 더 나를 위로하랴. 믿느니 나 자신만이 최종적 내 원군이다. 허망하다 느낄수록 내가 먼저 일어서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듯 말할 따름이다.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 2권은 ‘전방위 인문학자’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정치·사회·문화 각 방면에 걸쳐 저자의 날카로운 안목을 드러낸다. 산문집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0년에 걸쳐 도 교수가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글들을 추렸다. 그는 “지금쯤 우리는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시장엔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라며 “그것들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시 챙겨봐야 할 때”라고 1권 표제의 의미를 부여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선 도 교수의 사상 전반이 총론처럼 제시된다.

산문집 2권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라는 표제는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괴테의 어머니 회고록에서 한 구절을 따온 것. 책과 이야기의 효용을 문학적으로 역설하고 있는 2권에선 저자가 문화운동가로서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을 일으키고, ‘기적의 도서관’을 짓는 일에 몰두해온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도 교수는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영국 왕립학회의 모토는 과학의 것일 뿐 아니라 ‘인문학의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김사과 작가의 산문집 ‘설탕의 맛’은 여행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단순한 여행기는 결코 아니다. 작가 자신이 ‘이방의 관찰자’로 보낸 20대 시절 경험했던 몇몇 도시에 관한 이야기다. 2007년의 프라하와 뉴욕부터 포르투, 베를린 그리고 다시 2012년의 뉴욕에 이르기까지 작가 자신이 만났던 사람과 부딪혔던 사건, 감당해야 했던 날씨와 마음의 내밀한 동요 등을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책 제목은 왜 ‘설탕의 맛’일까.

“여행 내내 나는 초국적 자본주의가 직조해낸 촘촘한 그물에서 단 한 순간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내 세대의, 우리 시대의 여행이다.(중략) 갈수록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그건 정확히 2010년대의 한국, 아니 지구 위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정서 상태다. 그것은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이다. 이 책은 그 맛에 대한 이야기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_문화일보 기사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3100103253006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