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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가격 : 16,000원
작가 : 지은이 버크, 베카리아, 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페이지 : 368p
발행일 : 2017-12-15
ISBN : 979-11-88047-29-1
책소개

국내 최초, 세계 명저자들의 서문을 모았다!
당대 최고 독서가 장정일의 세상을 바꾼 ‘위대한 서문’

세상에는 책을 쓰는 게 기쁘다 못해 법열까지 느껴가며 집필한 작가들이 있다고 한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저자들의 열정과 애정을 조금만 나누어 받는 것만으로도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독서가 장정일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거나 그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서문 서른 편을 모아 『위대한 서문』을 펴낸다. 이 책을 엮은 장정일은 이 작업을 가리켜 “순수한 기쁨만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전에도 헤겔을 비롯한 명저자들의 단일 서문을 모은 책은 있었으나, 『위대한 서문』에서처럼 문학·철학·역사·예술·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저에서 뽑은 서문집은 없었다. 『위대한 서문』은 그 자체가 빛나는 고전의 역사를 담은 별들의 지도로서 훌륭한 독서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서문을 발표순으로 수록해 천오백여 년에 달하는 서문의 변천사를, 나아가 인간 사상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 서문집을 읽으며 독자들은, 새로이 서문의 비밀을 발견하고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서문집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장정일이 찾아낸 서문의 비밀
우리 삶처럼, 독서에도 지도가 필요하다

엮은이 서문에서 장정일은 “효율적인 여행에 지도가 필수인 것처럼, 독서에도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서문을 건너뛰고 곧장 본문을 읽는 독법을 아무런 목표도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에 비유한다. 그러한 여행이 더 극적일 수는 있지만 독서에서는 독자를 오독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목을 ‘돛’에 비유하며 올바로 책을 이해하고 글쓴이의 주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제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독서론에 따르면 우리가 소홀히 여기고 건너뛰기도 하는 목차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설계도’다. 우리는 이 목차를 통해 저자의 사고과정을 추체험할 수 있다. 또한 서문은 제목이라는 압축 파일을 푸는 ‘암호’로서 책이 쓰여진 동기와 방법론을 설명해주고 저자가 다루는 질문의 윤곽과 주제를 명료하게 해준다. 더욱이 많은 서문은 친절하게도 내용을 요약해주어 독자의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즉 서문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해설해주는 최고의 참고서로서, 독서하는 동안 곁에 두고 매번 펼쳐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장정일은 서문을 되새김질하다보면 서문과 본문 사이에 생긴 모순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자로 쓰인 서문의 양은 본문보다 적을지 몰라도, 글쓴이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서문은 그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 미해결로 남은 틈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해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 결과 서문은 본문과 따로 떼어 음미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서문의 역사는 곧 책의 역사다
부실한 서문치고 뛰어난 명저는 없다

앞서 말했듯 서문은 저자가 자신의 책 첫 부분에 붙이는 간략한 글로, 그 내용에 따라 길이와 형태가 다양하다. 『위대한 서문』에 실린 대부분의 서문은 집필 동기와 목적, 체제와 방법론, 주제와 내용 요약을 아우르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변호와 반박을 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서문의 특징이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고대 로마의 고전 『군사학 논고』에는 저자가 저작을 왕에게 ‘봉헌’하며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서문이 실려 있다. 이는 학문이나 예술이 왕과 귀족의 보호 아래 육성되어온 흔적으로 그 시대의 서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했던 관습이다. 학문과 예술이 왕과 귀족으로부터 독립하고서야 서문은 헌사의 형태를 벗어나 천재성과 독창성을 뽐낼 수 있었다.
걸리버의 친구라며 능청스럽게 서문을 쓴 조나단 스위프트. 그에게는 민감한 내용 탓에 신분을 숨기고 출판을 의뢰해야 했던 속사정이 있었다. 20여 년 동안 수도 없이 글을 시작하고, 포기하길 반복하다 끝끝내 책을 완성해낸 몽테스키외. 어떻게 그의 문장을 단 한 줄만 읽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책에 쏟아진 반론들을 주의깊게 읽고 그 반박과 자신의 방법론을 차분하게 써내려간 버크. 소설의 역사와 함께 소설 쓰는 법을 논증한 미치광이 사드. “하루살이 작가들이 사실을 직시하고 제발 붓을 꺾어주었으면 한다”라고 외치는 그의 서문을 읽고 나면 이 이성理性의 광인이 얼마나 박학다식했는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시집 『악의 꽃들』 서문을 시 한 편으로 대체한 보들레르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서문까지만 읽으라고 말하는 로르카(하지만 그의 서문을 읽고도 빨리 그다음 장을 펼쳐보고 싶어 안달나지 않을 독자가 과연 있을까?) 등등. 이 책에 실린 서문들을 읽고 나면 “헛소리나 늘어놓은 부실한 서문치고 뛰어난 명저는 없다”는 엮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장정일이 짚어주는 서문의 역사에는, 동시대의 큰 사랑을 받은 책과,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되어 수난을 겪었으나 훗날 그 가치가 재평가된 명저 등 극단의 운명이 뒤섞여 있다. 이 서문의 목록과 저자들의 삶을 톺아볼 때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글쓴이들에게 세상에 대해 꼭 해야 할 말이,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확신으로 그들은 세상의 비난이나 몰이해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지금 이 세상은 우리가 꾸었던 꿈의 결과다
이 ‘미해결’의 꿈들은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의 수록작을 하나씩 읽어가다 문득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사람은 유한한 생을 살지만 이들이 모여 ‘우리’가 될 때 인간은 거듭나고 ‘내일’이라는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식의 시공간을 확장할수록 우리 삶의 토대는 더 깊어지고 탄탄해진다. 그것은 동시대인에게서 오는 것이기도, 혹은 까마득한 과거의 누군가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한 것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별은 혼자 빛을 내지 않는다. 그 별은 더 큰 빛을 되비추는 하나의 길이자 시선이다. 지금 저무는 저 별은 내일 빛날 또 하나의 별을 예비하며 멀어진다. 어떤 이들은 그 빛을 통해 지금 우리가 발 딛은, 완결된 듯 보이는 세상의 틈을 발견하고 숨을 쉴 것이다. 그것이 아마 오늘날 세상이 존속하는 이유, 참혹한 전쟁과 비극을 겪으면서도 인간이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서문들은 저자가 자신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며 건넨 인사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믿는 바가 받아들여지고 빛을 볼 그날의 독자들에게 미리 전하는 안부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꾸었던 인간에 대한 꿈, 그 결과에 살고 있다. 이것이 곧 책의 역사이자 인간이 만들어온 세상의 역사다. 이 ‘미해결’의 꿈들은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이젠 본문으로 들어가기로 하자.”(도스토옙스키)


◎ 수록 작가와 작품 소개

1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301?~400?)는 4세기 로마의 군사 저술가로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그의 저서 『군사학 논고』(378?~392?)는 발간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천년이 지난 후 가치를 재평가받았다.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군사 개혁의 기본서가 되었고, 오늘날 군사학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책에 아드리아노플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책을 발렌티아누스 2세에게 봉정한 것으로 보아 그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2 제바스티안 브란트(1458~1521)는 독일 바젤 대학에서 법학교수를 지내고 번역과 출판 활동을 했다. 『바보배』(1494)는 세상의 바보들을 싣고 바보들의 천국, ‘나라고니아’로 항해하는 이야기이다. 브란트는 110가지가 넘는 유형의 바보를 소개하며 종교개혁 이전의 타락한 사회상을 꼬집는다. 글을 모르는 이도 내용을 알 수 있게 각 글마다 목판화를 배치한 것이 특징인 이 책은 르네상스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과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에도 영향을 미쳤다. 풍자의식에 저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보배 판화 뱃머리에 바보깃발을 들고 있는 박식한 바보가 바로 제바스티안 브란트다. 바보배는 오백 년도 더 전에 침몰했지만 ‘바보거울’은 세상에 남아 우리를 비추고 있다.

3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1466~1536)는 네덜란드 태생의 인문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이다. 금서로 지정되었음에도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우신예찬』 등의 작품 속에서 당시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했으나,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그리스와 라틴 고전을 연구하며 인문주의 운동에 앞장섰고, 평생에 걸친 고전 강독의 결실을 고스란히 담아『격언집』(1500)을 펴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격언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우리 삶에서 고통을 덜어낼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독자에게 자기 자신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 책에는 자기 안팎에 자리잡은 야만을 끊고 인문주의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에라스뮈스의 의도가 담겨 있다.

4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네덜란드의 철학자이다. ‘바뤼흐’는 ‘축복받은 자’를 뜻하는 유대식 이름이다. 스피노자는 라틴어 ‘베네딕투스’를 더 즐겨 사용했다.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촉망받는 엘리트였지만 유대교 교리를 벗어나는 사상과 언행으로 혹독한 저주와 함께 파문 선고를 받았다. 그후 익명으로 출간한 『신학정치론』(1670)에서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이성을 경시한 결과 미신을 신의 신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두려움 때문에 광기에 내몰려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가 공포스러운 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그 잘못된 믿음과 미신을 이용해 대중을 통치한다고 본 것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은 신에게 비천하게 ‘아첨’하고 있었을 뿐이다. 또한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종교가 사람들을 박해하는 도구로 쓰이고 신념이 재판에 회부되어 비난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썼다. 나아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며 소수가 권력을 과점하는 공화제가 아닌 민주제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책은,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폐기 선고를 받고 금서가 되었다.

5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성직자이다. 당시 유명 정치인이었던 W. 템플의 비서로 일하면서 정계에 대한 관심과 풍자적 성향을 갖게 된 듯하다. 그가 익명으로 발표한 『드레피어의 편지』는 영국정부가 현상금을 걸 정도로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악랄한 착취와 통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풍자소설의 꽃이라고 불리는 『걸리버 여행기』(1726)는 민감한 내용 탓에 저자도 신분을 숨기고 출판을 의뢰했으며 당시 출판업자도 저자의 허락 없이 내용 일부를 변경하고 축소해 출간했다. 이 책은 1736년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온전한 내용으로 2판을 찍게 되었다. 그는 총 4부로 구성된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말년에는 정신병을 앓았다.

6 샤를-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1689~1755)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시대 정치사상가이다. 스물일곱 나이에 고위 법관이 되었고, 법·역사·물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학다식했다. 그는 20년에 걸쳐 완성한 『법의 정신』(1748)에서 입헌군주제와 삼권분립, 양원제 등을 주장했다. 몽테스키외는 주권 행사 방식에 따라 정부 형태를 구분하고, 정치권력을 입법권·행정권·사법권으로 나누어 독립성을 가진 서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사상 탄압을 피해 스위스에서 익명으로 출판한 이 책은 ‘모든 시대에 걸쳐 칭송받을 책’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2년 동안 22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저자는 읽는 이에게 ‘조국과 평등에 대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정치적 덕성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에게 권력이 평등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 이 개념을 민중이 소홀히 할 경우 민주정은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사상은 인권선언과 미국헌법의 토대가 되었다.

7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사회계약론자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은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공모전,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가?’에 응모한 것이었다. 공모전에서는 낙선했으나 후에 정식 출간되었으며, 그의 대표작 『사회계약론』의 기초가 된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 제도에 있으며,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한 ‘자연인’이라고 했다. 국가는 계약을 통해 형성된다는 그의 주장은 프랑스혁명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같은 해에 출간한 『에밀』에서는 ‘자연주의 교육론’을 내세웠지만, 정작 자신은 다섯 명의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맡겨 비난받았다.

8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사상가이자 영국 정치인이다. 처음에는 온건개혁파인 휘그당에 소속되어 그 맥락을 같이했으나,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보수주의로 돌아선다. 후에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1757)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경험하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대 미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9 체사레 보네사나 마르케세 디 베카리아(1738~1794)는 이탈리아의 법학자, 경제학자이자 계몽사상가이다. 그는 익명으로 출판한 『범죄와 형벌』(1764)에서 18세기의 가혹한 형벌과 권력남용 등을 비판하고 형벌 역시 사회계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자 개인에 대한 사적인 복수가 아닌 범죄 행위로 잃게 된 사회 선익의 회복을 형벌의 일차 목적으로 삼았던 저자는 처형이 중범죄를 예방할 수 없으며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베카리아는 도덕적·종교적인 ‘죄악’과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형벌의 목적을 완전히 새롭게 설정했다. 그의 주장 이전엔 개인의 문제로 다뤄지던 죄와 벌을 『범죄와 형벌』 이후엔 사회문제로 취급하게 되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을 계몽주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가했다.

10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20세기 이후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노력한 최초의 여권운동가이다. 20세기 이전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은 인간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참정권도 경제적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유했던 저자는, ‘여성은 열등한 이성을 지녔기에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주장한 루소에게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이성을 가졌고, 여성이 복종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닌 인간 고유의 이성’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교육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의 정치인 탈레랑이 프랑스 국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속 “여성은 오직 가사 교육만을 받아야 한다”라는 내용에 반발한 것이다. 그녀에게 기존의 여성 교육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용모와 행실을 갖추는 훈련일 뿐이었다. 『여권의 옹호』(1792)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자립해서 살 수 있으며 사회는 더 살기 좋아지리라 전망했다. 인종 및 계급 의식의 부재,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상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에 영향을 준 의미 있는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11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1740~1814). 흔히 사드 후작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작가였으며, 가학증을 뜻하는 ‘사디즘Sadism’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성적 문란과 신성 모독 등 다양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생의 1/3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저서는 사후 백년간 금기의 대상이었다. 생전에 그가 자기 이름으로 정식 발표한 『사랑의 범죄』(1800)는 완곡어법이 지배적인 소설집으로,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과는 달리 현실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겹겹이 드리워진 이 고전주의 미학의 장막 뒤에서도 ‘검은 태양’은 빛나고 있다.

12 노발리스(1772~1801)는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의 예명이다.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 독일의 대표적인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다. 노발리스는 연인이자 약혼녀였던, 조피 폰 퀸의 사망으로 느낀 비통한 심경을 『밤의 찬가』라는 문학적 서사시로 승화시켰으나 그 역시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파란꽃』(1802)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발표된 미완성 장편소설로, 주인공인 중세 기사는 꿈에서 만난 소녀, ‘파란꽃’을 찾아 떠난 여정을 통해 대시인으로 성장해간다. 이후 ‘파란꽃’은 낭만적 동경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13 앙리 뱅자맹 콩스탕 드 르베크(1767~1830)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소설가였다. 자유주의적 입헌왕정주의자였다. 대의원, 참의원 등을 지내고 나폴레옹 정권 초기에도 참여했으나, 자유주의적 사상을 탄압하자 독일로 망명했다. 『아돌프』(1816)는 스탈 부인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로 프랑스 근대 심리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우아하고 논리적인 문장과 함께 인물의 허위를 벗겨내는 작가의 진솔한 윤리의식은 『아돌프』를 ‘프랑스어로 창작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14 카를 필리프 고틀리프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프로이센의 장군이자 군사이론가이다.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전쟁, 해방전쟁이 이어지는 혼란한 시대에 살았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1832)은 당대의 실증주의적 전쟁이론들과 달리 인간의 정신을 고려한 전쟁이론을 확립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저서로 평가받는다. 전쟁은 수단이고 정치가 목적이라는 주장은 불변의 명제가 되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쟁론』을 집필하지만 마무리하지 못하고 콜레라로 1831년 세상을 떠났다. 아내 마리가 그의 작업을 이어받아 사후 1832년에 『전쟁론』을 출판했으며, 편집자이자 남편을 사랑한 아내로서 서문을 쓰기도 했다. 마리 역시 1836년 세상을 떠나 남편 곁에 묻혔다. 마리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쓰라린 죽음도 사랑을 갈라놓진 못한다Amara Mors Amorem Non Separat.”

15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1813~1855)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시인이다. 다양한 가명을 써서 작품을 발표했고, 가명으로 본인의 작품을 스스로 비판하기도 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은 스스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지 못함을 반성하며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책이다. 이 걸작은 단 두 달만에 쓰여진 것으로 그를 오랫동안 사로잡은 사색과 고뇌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아니한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에서 유래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곧 ‘절망’을 말한다. 그는 절망을 원죄에 빗대었고, 이 절망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이 곧 기독교인의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인정받지 못한 천재로 살다 1855년 마흔넷의 나이로 프레데릭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16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로젠크란츠(1805~1879)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낭만주의적인 문학적 성향과 헤겔철학의 관념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상을 전개했다. 그의 대표작인 『추의 미학』(1853)에서 로젠크란츠는 도시화와 빈곤화 등 사회에서 다양하게 드러난 추한 현상들을 언표화, 범주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는 미학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왔던 추를 미와의 변증법적 관계에 놓고 ‘추의 미학’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추’는 미를 전제해야 현존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추의 부정성은 예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

17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1821~1867)는 프랑스의 시인, 미술평론가이자 근대 상징주의의 시조로 평가된다. 베를렌·랭보·말라르메 등 당대 상징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대시의 원천이자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시집 『악의 꽃들』(1857)은 출간 직후 윤리성 문제로 벌금형과 함께 6편의 시에 대해 삭제 명령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와 박해에 시달린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들』에 대해 ‘내 온 애정을, 모든 증오를 집어넣었다’는 자평을 남겼다. 프랑스는 한 세기가 지난 1949년에서야 유죄선고를 파기했다.

18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1823~1900)는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종교학자이며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 『독일인의 사랑』(1866)은 순수한 두 남녀가 내면을 서로 교감하며 이뤄가는 고귀한 사랑을 유려한 시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신화와 동양 철학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섬세하고 풍부한 내면 묘사를 통해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을 전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꽃이 왜 피어나는지, 태양이 왜 빛나는지 물을 수 없듯, 당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상실의 슬픔은, 사랑하는 이가 부재한 세상에서 만인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요구로 승화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가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은 바다로 흘러들어 모두를 감싼다. 독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가장 많이 읽히는 독일 문학작품에 속한다.

19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은 영국의 박물학자·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이다. 『종의 기원』(1859)은 그가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동승해 5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탐사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진화론을 입증하려 20여 년간 수집한 증거와 자료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기독교적 신앙에 근거한 창조설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인간의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종의 기원』은 종교계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고 과학계에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진화론은 산업시대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데 매우 적합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생물학뿐만 아니라 철학, 인문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 생생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19세기 리얼리즘 문학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이다. 과도기 러시아의 병든 사회상과 인간 심리를 집요하게 묘사했으며 20세기 문학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1879~1880)은 친부살해를 소재로 한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선과 악, 종교적 믿음, 인간 본질에 대한 그의 사색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을 탈고할 즈음에는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시력이 나빠져 있어서, 아내 안나에게 자신이 구술한 것을 속기하게 해 작품을 완성했다.

21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독일의 경제학자, 사회주의 철학자로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를 수립했다. 마르크스 사후 마르크스주의의 실행자로서 다양한 저술 및 출판 활동을 했다. 마르크스는 1870년대 중반부터 『자본』을 완성할 목적으로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 고대사회에 관한 일련의 발췌노트를 작성했다. 마르크스의 사망 후 그의 노트를 발견한 엥겔스는 『고대사회』에 대해 자기 학설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더해서 이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을 내놓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부권적 일부일처제는 인류가 출현하며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모권제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이며, “인류가 체험한 가장 통렬한 혁명 중 하나”임을 역설한 이 책은 사회적 분업과 생산의 발전이 씨족제도 붕괴의 주된 요인임을 드러내며 국가의 역사적·계급적 성격을 밝혔다. 엥겔스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세대는 애정만으로 맺어질 것이며, 그때 양성의 평등이 진정으로 실현되리라 예측했다.

22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독일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오늘날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는 니체는, 생전에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으며 종교계와 도덕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도덕이라는 개념 속에는 인간으로서 지니는 삶의 한계와 그 조건 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던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1887)을 통해 어떤 조건에서 인간이 선악이라는 도덕적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지, 도덕 개념과 도덕 가치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다룬다. 니체는 기독교 사제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과 맞물려 선악의 도덕 및 허무주의가 덩달아 힘을 얻었다고 보았다. 니체에게 있어 이 허무주의를 극복할 유일한 가치는 바로 ‘고통’이었다. 1889년 초 정신 이상 징후를 보이고 바젤 정신병원에 입원한 니체는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23 앙브루아즈 폴 투생 쥘 발레리(1871~1945)는 프랑스의 시인, 평론가, 사상가이다. 발레리는 18세부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앙드레 지드와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소개되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문학가임을 부정했다. 발레리는 자신의 ‘내적 요구’에 의해 문학작품을 써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발레리에게 시는, 전생애에 걸쳐 추구해왔던 문제, 즉 의식의 명확성을 탐구하는 수단이었다. 그에게는 시 자체보다 시를 ‘만들고’ ‘구축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발레리는 테스트 씨라는 인물을 통해 전한다. 1896년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을 발표하고 절필에 들어간 발레리는 ‘시를 쓰지도, 전념하지도 않고 거의 그걸 읽지도 않으며’ 20년을 보낸다. 옛날 시를 모아달라는 친구들의 간청에 문학으로 되돌아온 발레리는 신작시와 함께 조금씩 테스트 씨에 대한 새로운 글들을 발표했으며 이후 평생에 걸쳐 『테스트 씨』(1926~1940) 연작을 고치고 다듬었다. 이 독창적인 산문 작품은 동시대와 후대의 문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발레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드골 정부는 국장國葬으로 그를 예우했다. 그는 자신에게 지중해적 영감을 불어넣고 유년기의 추억을 선물했던 도시 세트의 ‘해변의 묘지’에 잠들었다.

24 앙드레 기욤 폴 지드(1869~1951)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이다.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893년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다 결핵을 앓은 뒤 지드는 삶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지상의 양식』(1897)은 시, 일기, 여행 기록, 허구의 대화 등 다양한 형식을 동원해 이때의 해방감과 생명의 전율을 노래한다. 특히 지드는 동성애에 대해 파격적인 태도를 취하며 찬란한 청춘을 예찬한다. 투병 경험이 지드에게 미래가 아닌 현재의 소중함을, 욕망이 줄 수 있는 환희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우리의 삶은 열병 환자의 앞에 놓인 “찬물이 가득 찬 유리잔”과 같다. 우리에게 이 한잔의 물은 “그토록 시원하고 열은 안타깝게 목을 태운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엔 외면받았으나 이후 전후 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카뮈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에 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드는 우리에게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희망’하는 기쁨을 가르쳐주었다.

25 에밀 에두아르 샤를 앙투안 졸라(1840~1902)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이다. 하층 대중 묘사에 뛰어났던 졸라는 인간의 추악과 비참성을 진실하게 파헤치는 일이 삶의 개선과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1871년부터 23년에 걸쳐 전부 20권으로 완간한 ‘루공마카르Le Rougon-Macquart’ 총서는 졸라 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중 『목로주점』과 『나나』 『제르미날』 등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졸라는 당대 최고 인기 작가가 되었다. 『나는 고발한다』(1898)는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에 발표한 격문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주장하는 글이었다. 처음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로로르>지의 편집장 클레망소가 ‘나는 고발한다!’로 바꿀 것을 권했다. 1면에 ‘나는 고발한다!’를 실은 <로로르>는 폭발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이후 드레퓌스 재심 운동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러나 졸라는 이 사건으로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1902년에 의문의 가스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26 앙리 루이 베르그송(1859~1941)은 192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였으며,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22세에 교수시험에 합격,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한림원 회원이자 국제협력위원회의 의장까지 지냈다. 『웃음』(1900)은 ‘웃음, 사람은 무엇에 대해, 왜 웃는가?’라는 1884년의 강연에서 그 내용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동시대인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은 이 책의 의의는 웃음이라는 인간 현상을 분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합리주의에 대한 당대의 비판을 명석한 분석과 우아한 문장으로 대변한 데 있다. 20세기 초 사상계를 지배한 실증주의는 인간에게 우울과 삶의 무의미를 강요하는 비관론을 담고 있었다. 발달하는 기계문명 속에서 존재 의의를 잃고 물리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그림자로 전락해버린 인간은 베르그송의 철학 속에서 영혼을 되찾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그의 미적 직관과 예술에 대한 통찰에 영감을 받아 희망을 노래했다. 베르그송은 단순히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 그대로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보도록 가르쳐주었다. 인간의 웃음은 심층에 자리한 구조와 본질을 뒤흔들며 ‘틈’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틈’을 통해 변화의 꿈을 꾼다.

27 지그문트 슐로머 프로이트(1856~1939)는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로 정신분석의 창시자이다. 1885년 히스테리 환자들에 대한 연구를 접한 후 심리적 질환의 원인을 뇌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보편적이던 최면술의 한계를 깨닫고 자유연상법, 대화법을 통해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1896년 처음으로 ‘정신분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꿈과 무의식, 성적 충동, 억압된 공격성 등을 기반으로 심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단서로 신경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의 출세작 『꿈의 해석』(1900)은 사십대 중반에야 출간되었으며, 초판 6백 부가 팔리기까지 8년이 걸렸다. 당시 꿈은 진지한 연구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했으나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욕망의 충족시키려는 잠재의식이 나타난 대리물, 즉 ‘무의식에 이르는 길’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신화, 예술, 문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환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분석하고 그 의미와 생성 체계를 연구했다. 이 책을 탈고하고 프로이트는, 여기 담긴 식견은 그가 누구든 평생에 단 한번밖에 가질 수 없으리라고 말한바 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말년에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으며 암으로 사망했다. 프로이트의 연구는 인간의 내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28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철학에 있어서는 생철학을, 사회학에 있어서는 형식사회학을 주장했다. 학계의 이방인이자 학자로서 불운한 삶을 살았으나 세상을 떠나기까지 총 31권의 저서와 256편에 이르는 방대한 글을 남겼다. 『렘브란트』(1916)에서 짐멜은 생철학적 관점으로 렘브란트의 예술관을 분석한다. 그는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이 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렘브란트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순간과 운동을 표현했고, 그 순간은 개인의 삶의 ‘과거-현재-미래’, 즉 유기적 시간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29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는 스페인의 시인, 극작가이다. 『집시 민요집』으로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았고, 극단을 창단하여 『피의 결혼식』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을 발표하여 사랑받았다. 『인상과 풍경』(1918)은 그라나다 대학 재학 시절 스승 마르틴 도밍게스 베루에타와 함께 스페인 일대를 여행하며 받은 인상을 담은 그의 첫 산문집이다. 안달루시아 지방 사람들의 한이 담긴 ‘칸테 혼도’의 음악성, 그 존재의 어두운 심연을 시적인 문장으로 잡아낸 회화적 상상력은 훗날 펼쳐질 로르카 문학의 풍경을 암시하고 있다. 그가 매료된 영혼의 깊이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바다보다도 훨씬 깊다’. 그는 38살의 젊은 나이에, 스페인 내전 중 고향 그라나다에서 소련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붙잡혀 극우 민족주의자에게 사살당했다. 이후 프랑코 정권에 의해 그의 작품은 한동안 금지당했다.

30 요한 하위징아(1872~1945)는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문화학자이다. 어린 시절, 고향을 방문한 카니발 행렬을 보고 매료되어 의례, 축제, 놀이 연구를 시작했다. 언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문학 및 예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은 그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감당하기 위해 사람들은 삶에 대한 환상을 열망한다고 보았던 저자는, ‘문화에서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에 대하여’라는 1933년 강연과 저서 『호모 루덴스』(1938)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며, 문명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았다. 그에게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에 그치지 않았다. 놀이는 법, 정치, 예술, 전쟁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문화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었다고 보았다. 그중에서도 그는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놀이활동으로 예술을 꼽는다. 이렇듯 그에게 놀이는 정신적인 창조활동 모두를 칭하는 것으로 인간은 이를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한다고 보았다. 역사학 교수로 독일군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레이던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히틀러를 비판한 일로 나치에 의해 감금당했다가 1942년 석방되어 시골집에 유폐되었다. 네덜란드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저자소개

지은이 버크, 베카리아, 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장정일은 경북 달성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시를 쓰다가 희곡과 소설 등으로 관심을 넓혔다.

목차

서문은 책의 작은 우주다 장정일

1 폐하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 『군사학 논고』

2 세상은 바보들 천지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

3 격언은 가장 오래된 가르침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 『격언집』

4 이성의 빛과 미신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5 독자들은 만족을 얻을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6 나는 이 책을 20년 동안 썼다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7 헌법 이외의 다른 지배자는 없다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8 우리의 감정과 그것들의 원천에 대한 이론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9 온정과 인도애가 극형보다 낫다
체사레 보네사나 마르케세 디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10 허울 좋은 경의에 바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11 인간이 소설을 쓰는 두 가지 이유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사랑의 범죄』

12 나는 그대로 해서 살게 되었다
노발리스, 『파란꽃』

13 해적판이 나돌아다니고 있어서
앙리 벵자맹 콩스탕 드 르베크, 『아돌프』

14 내적 연관성을 지닌 조각들
카를 필리프 고틀리프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15 어른이 되기 위하여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16 미의 개념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로젠크란츠, 『추의 미학』

17 역겨운 것에 매혹되는 우리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악의 꽃들』

18 불꽃 속에서 건져낸 글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19 진화는 ‘자연선택’이죠
찰스 로버트 다윈, 『종의 기원』

20 이 소설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21 루이스 모건을 기리며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22 칭송받는 모든 도덕을 의심하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도덕의 계보학』

23 나 자신에게 내면의 섬 하나를……
앙브루아즈 폴 튀생 쥘 발레리, 『테스트 씨』

24 회복기의 환자를 위하여
앙드레 기욤 폴 지드, 『지상의 양식』

25 나의 소망은 증언을 남기는 것
에밀 에두아르 샤를 앙투안 졸라, 『나는 고발한다』

26 웃음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앙리 루이 베르그송, 『웃음』

27 나는 시인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라오
지그문트 슐로머 프로이트, 『꿈의 해석』

28 통일성을 체험하고 고찰하는 것에 대해
게오르그 짐멜, 『렘브란트』

29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

30 놀이가 문명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출처 및 주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