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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네이버]저자와의 인터뷰 <길귀신의 노래> 저자 곽재구
2014/03/1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099



<길귀신의 노래>는 <포구기행>, <예술기행>을 잇는 곽재구 시인의 인생과 여행 이야기인데요, 제목이 다소 독특합니다. \'길귀신\'이라는 단어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길귀신\'은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이 꾸는 꿈, 사랑, 절망, 그리움, 아픔, 희망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내가 써야 할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고단한 하루 일을 끝내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연민과 아름다움의 느낌을 함께 줍니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참으로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쓴 허름한 시들이 그들의 꿈과 사랑, 노동에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쓴 글들이 그들의 삶에 한 줄의 빛과 위로가 될 수 있으면 하는 꿈을 지닌 것이지요.
글을 쓰며 살아오는 내내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생명들의 모습은 내게 다정했습니다. 그들이 없다면 삶도 시도 없었을 터이니 내가 그들을 그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들이 내게 밥도 주고 시도 주고 사랑과 눈물도 주었습니다.
다소 두렵고 서늘한 느낌이 있지만 길귀신은 내게 가장 사랑스럽고 따스한 느낌의 말입니다. 우리 모두 길에서 태어나 길 위를 배회하다 어느 순간 다시 길의 한 풍경으로 저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도 모두 길귀신인 것이지요.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길귀신, 땀 냄새도 사랑의 냄새도 폴폴 풍기는 길귀신.

책의 많은 부분이 순천만의 \'와온 바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는데요, 시인과 와온 바다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 그리고 와온 바다는 곽재구 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합니다.

2000년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수로 가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저녁노을을 만났습니다. 따스하고 평온한 노을빛이 하늘과 개펄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요. 노을이 하늘이 아닌 땅 위에도 빛을 뿌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한 노인으로부터 마을의 이름이 \'와온(臥溫)\'이라는 것도 알았지요. 누울 와(臥) 따뜻할 온(溫). 세상에 이런 이름을 지닌 마을이 있다니…. 언젠가 이 마을에 생의 한 부분을 누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봄, 순천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칠 기회가 생겼습니다. 와온 바다와 함께 지낼 기회를 지닌 것이지요.
와온 또한 내게는 사랑스러운 길귀신의 하나였습니다. 한 주일 내내 와온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요. \'와온 바다처럼 따스한 글을 썼으면 좋겠다\' 싶었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따스하게 누울 수 있는 삶의 언덕을 지녔으면 싶었지요.
어느 시절 어떤 누가 이런 이름을 바닷가 마을에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꿈과 나의 꿈, 우리 모두의 꿈이 삶의 \'와온\'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러시아, 인도, 중국, 하와이, 우즈베키스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시고 그에 대한 글을 남기셨습니다. 이 중 어떤 여행지가 기억에 남으시나요? 독자들에게 꼭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한곳 있습니다. 인도 웨스트벵골 주에 자리한 비슈누푸르라는 곳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비슈누푸르는 삶과 신화가 결합된 동화와 같은 도시입니다.
델리에 자리한 인도의 역대 왕들은 즉위하며 비슈누푸르에 테라코타로 빚은 성채 하나씩을 세웠습니다. 성채들은 모두 크리슈나 신과 라다에게 봉헌되었지요.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8번째 아바타이며 라다는 소 치는 여인으로 크리슈나 신의 연인입니다. 신과 인간이 사랑에 빠진 것이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도인들은 모두 이 크리슈나와 라다의 사랑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평화로운 한 언덕 마을이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찬미하기 위한 기념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 살며 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인도에 간다면 비슈누푸르에 들르세요. 세계문화유산도 아니고 흔한 여행 가이드북에도 실려 있지 않지만, 이곳만큼 신과 인간의 삶의 에너지가 싱싱하게 느껴지는 곳, 세상에 드물 것입니다.

시 \'사평역에서\'가 발표된 지 3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책에도 \'「사평역에서」를 위하여\'라는 글이 수록되었는데요, 세월이 흘러도 이 시가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한 예술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예술가의 궁핍한 꿈에 있다 할 것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꿈과 희망을 놓지 않고 사투한 작품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지요.
내가 이 시를 쓰던 스무 살 무렵 한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힘든 시절이었고 개인적으로 고통이 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내 꿈은 하루 86,400초를 온전히 시에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단 1초를 허비하지 않고 모든 8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지요. 모든 시간들을 온전히 시에 바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이미지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지녔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시절 이후 다시는 86,400초를 온전히 내 시에 바치는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나이와 연륜에 상관없이 자신이 지닌 시간과 열정 모두를 바쳤을 때 태어날 수 있는 작품의 냄새가 \'사평역에서\'에 스며 있는 것은 아닌지요? 스무 살의 청춘이 만난 암울한 현실과 절망, 그 속에서 꿈꾼 단풍잎 한 장만 한 그리움의 냄새를 맡은 것 때문은 아닌지요?

▒ 책에 실린 일러스트와 손글씨, 사진들은 모두 시인의 솜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남기시는 것은 언제, 어떤 계기로 즐기게 되셨는지요?

책에 실린 그림과 사진들은 모두 외로움의 흔적들입니다. 장기간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인 현실이지요. 외로움과 만나 외로움과 함께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시장길을 걷는 것입니다. 외로움 속에서 한 여행자는 비로소 자신의 운명과 여행의 본질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외로움은 여행의 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밤 버스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려 만난 이국의 어느 마을에서 문득 깊은 외로움이 밀려와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 같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림 속으로 몰입할 때 나는 잠시 외로움을 잊고 또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요. 그럴 때 나 자신과의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이 여행 괜찮은 여행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과 절망이 이곳에 스며 있었을까? 혼자 묻고 생각하는 동안 새로운 에너지가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지요.
사진 또한 그렇지요. 외로울 때 셔터를 누릅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길귀신의 숨소리 또한 가장 쓸쓸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지요.